입에서 악소리가 날 정도로 험하기로 소문난 산중의 하나가 원주 치악산이다. 그 치악산 안에서도 가장 험하다고 할 수 있는 사다리병창길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나 눈소식이 있다고 하면 더욱 오르고 싶어진다.
산행코스(11.62km, 산행시간 5시간 25분, 등산칼로리 1,235kcal)
: 구룡탐방지원센터-구룡사-세렴폭포-사다리병창길-정상-비로봉삼거리-계곡길-구룡사-구룡탐방지원센터
전일 내린 때늦은 폭설로 들머리부터 온통 눈세상이다. 꽃피는 춘삼월에 제대로 된 눈꽃산행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치악산의 눈꽃이 기대가 된다. 이른 시간에 여유 있게 주차를 하고, 탐방로 입구에서 입장료를 지불하고 본격적으로 눈세상으로 들어선다. 눈에 쌓인 구룡사 주변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에서의 눈세상은 멋지긴 하지만, 영상의 날씨로 인해 자취를 감출 준비를 하는 듯하다. 그래도 좋다. 세렴폭포의 운치는 더할 나위 없다.
눈꽃세상에 흠뻑 빠진 산꾼들은 삼거리에서 대부분 사다리병창길을 택한다. 나도 물론 사다리병창길로 향한다. 계속되는 계단과 오르막, 로프와 철제봉 등 다른 때였으면 입에서 단내가 났을 터이지만, 눈꽃에 취해 크게 힘든지를 모른다. 날이 흐려 조망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눈의 향연은 감동을 준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걷다가 사진 찍고, 또 걷다가 사진 찍고를 반복한다.
산행시작 세 시간여만에 정상인 비로봉에 올라선다. 비로봉의 돌탑이 먼저 얼굴을 내민다. 뒤이어 두 개의 돌탑과 정상석이 차례대로 자리를 내어준다. 서둘러 정상석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는다. 정상에서의 날씨는 아래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 정상의 기온은 영하 5도를 가리킨다. 조금 더 정상에서의 기운을 여유 있게 받고 싶으나, 땀이 식은 채 오래 버티기 힘든 체감온도로 인해 그럴 수 없다.
정상에서의 인증샷 후에 계곡길로 하산을 서두른다. 비로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계곡길이다. 계속되는 급한 내리막이긴 해도 그렇게 험하지는 않다. 푹신푹신한 눈밭이라 속도를 내기에도 부담이 없다. 식사는 따로 하지 않고 중간중간 행동식으로 보충한다. 풍성한 눈을 보면서 걷는 산행이라 피곤할 줄 모른다. 어느새 세렴폭포 삼거리에 도착한다. 신기하게도 이곳에서부터는 눈이 녹아 있다. 길이 많이 질퍽거린다. 산행을 조금 늦게 시작했으면 제대로 된 치악산 눈꽃 경험을 못할 뻔했다. 이래서 산행은 항상 타이밍 싸움이다.
구룡사 앞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와 원점에 다섯 시간 반 만에 도착한다. 힘든 산행코스였음에도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 치악산의 화려한 눈꽃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보다. 악소리 나는 험한 산의 이름이 아닌, 화려한 눈꽃산행의 기억으로 치악산은 남겨질 듯하다. 고속도로 정체시간을 감안해, 현지에서의 하산식은 과감히 생략하고 서둘러 차를 몰고 서울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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