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설악산의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특히나 가을에 만나는 설악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듯하다. 다양한 설악의 코스 중에서도 난이도가 있는 만큼 풍광이 뛰어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곳이 서북능선이다.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까지 가는 너덜길에서 올려보는 대청봉과 용아장성, 뒤돌아보는 가리봉, 주걱봉의 가리능선 조망은 언제 보아도 환상적인 모습이다. 그곳으로 다시 한번 떠나본다.
산행코스(13.9km, 산행시간 9시간 21분, 등산칼로리 4,515kcal)
: 한계령 쉼터-한계령 휴게소-너덜길-귀때기청봉-1408봉-큰감투봉-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
시청에서 밤 11시 버스를 타고, 한계령으로 향한다. 세 군대의 탑승지를 거쳐, 버스가 출발한다. 한참 꿀잠을 자고 깨어보니 새벽 1시 30분, 설악휴게소이다. 여전히 새벽시간엔 주유소까지 모두 불이 꺼져 있는 암흑천지이다. 잠깐 휴식 후 한계령 휴게소에 2시 30분 정도에 내려준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산행준비를 마친다. 3시가 된다. 이제 산행시작이다.
아직 단풍이 채 들기 전이라 그런지 산객이 그리 많지 않다. 헤드랜턴 불빛 속에 시원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돌길과 계속되는 계단길을 거쳐, 한계령 휴게소에 들어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숨을 돌리며, 복장을 점검한다. 새벽바람이 제법 거센 곳이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왼쪽 귀때기청봉 방향으로 향한다. 약 1.8km의 거리가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구간이다.
큰 바위들이 뒤엉켜 있는 너덜길 구간은 반드시 군데군데 꽂혀 있는 쇠막대기를 이정표 삼아 따라가야 한다. 짧은 구간마다 알바를 경험하는 이들이 제법 보이는 곳이다. 너덜길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우측 편으로 보이는 대청봉, 중청봉, 소청봉 능선길 뒤로 벌겋게 여명이 깃들고 있다. 일출이 곧 시작되려고 한다. 일출을 맞기 위해 서둘러 좋은 자리를 찾아본다.
대청봉 오른편으로 빨간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설악의 일출이다. 일출과 더불어 사방으로 하얗게 구름바다 펼쳐져 있다. 이런 장관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엄청난 복을 받은 감동으로 한참을 꼼짝 않고 그 자리에서 사방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제대로 설악산의 속살을 경험하고, 귀때기청봉으로 들어선다. 계속되는 운해의 조망을 만끽하며,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이미 비박후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으로 향하는 이들이 많이 눈에 띄고 있다. 대단한 고수들이다. 귀때기청봉 이후로도 엄청난 너덜길이 이어진다. 속도를 낼 수 없는 구간이다. 조심하며 여기저기 조망을 더 즐긴다. 멀리 보이는 1408봉 위로 헬기가 한 대 움직이고 있다. 무슨 사고가 난 모양이다. 부디 큰 부상이 아니길 바래본다. 남교리까지 가는 대신에 장수대까지만 가는 걸로 선택한 결과, 시간 여유가 많아 제대로 즐기면서 산행을 이어 나간다.
거의 보이지 않는 단풍이 아쉽기는 하지만, 볼거리가 부족하지 않기에 불만은 없다. 1408봉에 이르기 전에 만난 철을 잊은 수줍은 진달래꽃도 반갑기만 하다. 1408봉 이정표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계속되는 오르내림의 능선길을 걷는다. 멀리 우뚝 솟아 있는 대승령과의 간격은 줄어들지 않는 듯 까마득하다. 대승령에 약 1km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만난 급경사의 내리막 계단 앞에서 잠시 쉼을 가지며 바위에 올라 조망을 다시 한번 즐겨본다.
한참 동안 내리막 구간을 이어 와서 또다시 고도를 올려야 하는 구간이라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완만한 경사로 대승령까지 이어진다. 힘들게 도착한 대승령은 크게 볼품은 없는 지점이다. 조망이나 어떤 시설물이나 특별한 게 없다. 다만 이곳에서 장수대로 향하던가, 아니면 남교리로 향하는 이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여유가 있는 공간이다. 남교리까지는 8.7km, 장수대까지는 2.7km이다. 무리를 안 하고, 장수대를 선택한 게 마음의 여유를 심어준다.
대승령에서 장수대로 내려가는 구간은 그래도 남교리 내려가는 구간보다 무난하다. 앞만 보고 집중해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쭉쭉 뻗은 잘생긴 나무군락지를 지나, 수량적은 계곡을 만난다. 좀 더 나아가면 대승폭포와 만난다. 멀리 바라보는 대승폭포는 규모가 엄청나다. 수량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떨어지는 폭포수는 장관 그 자체이다. 장수대까지 남은 구간은 계속되는 계단구간이다. 무의식적으로 걷는 발에 집중하며 설악산 장수대분소에 무사히 내려선다. 두부전골로 속을 달래고, 설악산의 큰 축복을 받은 기억을 안고, 버스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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